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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은 영자 신문의 패션 관련 기사에, 이태리가 패션 산업의 최강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로마나 밀라노에서는 지하철을 타도 모든 사람들이 잘 차려 입은 모습을 보고 깜작 놀라게 된다고 하더군요. 과연 그럴까? 정작 사람들이 패션과 예술의 도시로 동경하는 파리나 뉴욕엘 가봐도(실제로 가봤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작 빠리쟌느나 뉴요커들은 청바지에 수수한 차림으로 다닌다고, 소위 된장녀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던데...?

궁금하던 차에, 마침 제가 요새 인터넷 전화(스카이프)를 통해 영어 교습을 받고 있는 선생님이 이태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물어 보기로 했습니다. (스카이프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실력 있고 믿을 만한 영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놀라운 혜택 중 하나죠. 나중에 이에 대해 따로 포스팅을 할 기회가 있을 듯) 이 선생님은 할아버지가 이태리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기 때문에 (갱스 오브 뉴욕에 나오는 그 이태리 이민자들을 생각하면 될 듯) 영어가 모국어이긴 하지만 대학 때 미국에 교환 학생으로 나왔던 이태리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나라인 이태리로 가게 된 케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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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태리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집착은 제가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이라는 겁니다. 이 선생님은 이태리로 건너가기 전에는 뉴욕에서 살았었고, 뉴욕도 패션이나 예술에 대해서라면 나름 둘째 가라면 서러울 동네인데도, 이태리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선생님한테 들은 얘기를 정리해 보면

1. 이태리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입은(입을) 옷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입은 옷에 대해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서로 의식을 한다. 여기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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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신이 영어를 가르치는 학생 중에, 의사, 변호사, 기업인 등 사회적으로 꽤나 성공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에게 이태리에서 리더의 덕목으로서 갖춰야 할 요건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한결같이 '옷 잘입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얘기하더라.

3. 이태리에서는 종종, 좋은 옷을 입어야 겠는데 돈이 부족하니 빚을 내서라도 옷을 사 입다가 파산하는 사람들이 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뭐 대충 이 정도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나는 수수하게 입고 다니겠다, 나를 표현하는 건 내가 입은 옷이 아닌 나의 내면이다, 뭐 이런 건 이태리에선 안 통한다 이겁니다.

하긴 사람들이 저 정도이니 만큼, 뭐든 이태리에서 드좌-인 된 거라면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 거겠죠? 이 사람들이 그네들끼리만 옷차림에 목숨 걸고 살면서 자기 만족에 빠져 산다면 모를까, 그들의 까다로운 안목을 통과한 제품들은 예외없이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비싼 값에 팔리고, 그 나라 경제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옷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지요. 대당 수억원이 넘는 가격보다도, 일단 거리에 나서는 순간 모든 사람의 눈을 압도하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차들도 모두 이태리에서 만들죠. 에스콰이어나 GQ 같은 남성 잡지를 보면 예를 들어 나무로 된 LP 턴테이블이라든지, 별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정말 갖고 있으면 간지 끝장이겠다 싶은 물건들이 소개될 때가 있는데, 거의가 예외없이 이태리에서 만든 것들입니다. 물론 가격은 극악무도하지만. (아 이거 정말 멋지군 하지만 가격이 뭐 이래 터무니 없이 비싸... 하고 다시 자세히 보면 0이 하나 혹은 두개 더 붙어 있곤 하죠... 정말로 두개가 더 붙어 있을 때도 있다는... ㅠㅠ)

갑자기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대구를 밀라노에 버금가는 패션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아르마니나 베르사체 같이 비싼 옷들도 사실 대구의 방직 공작에서 짠 섬유로 만든 거다, 그걸 재단해서 만든 옷이 저렇게 비싸게 팔리는데, 우리도 그렇게 못할 게 뭐냐, 뭐 이런 논리였던 것 같습니다. 주문받은 내용대로 섬유를 대량으로 짜내서 헐값에 수출하는 것과, 종이에 몇번 휘갈긴 드좌-인으로 남들에게 옷을 만들게 해서 그걸 욕 나오게 비싼 값에 파는 것 사이에는, 물론 넘을 수 없는 안드로메다의 간극이 존재하긴 하죠. 하지만 '쥬라기 공원 영화 한편이 자동차 200만대 파는 것보다 남는 장사더라'는 같잖은 동기가 그래도 한 15년 후에는 한국영화 산업을 그나마 현재의 위치로 끌어 올린 걸 생각해 보면, 당시의 원대한 포부가 좀더 힘을 받았더라면 뭔가 결과가 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물론 이태리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 발전은 정부가 계획을 짜서 공단을 조성하고 공장에 세제 혜택을 주고 어쩌고 한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내수 시장의 발전을 통해 소비자들이 높고 까다로운 안목을 가져서 포지티브 피드백을 줘야만 가능한 거겠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제품들이 그런 사례였던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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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 01:13 2008/09/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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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비밀방문자 at 2008/09/29 15:0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Commented by Sol at 2008/10/04 00:51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형님 요즘 너무 바쁘게 지내신다는 소식을 형수님을 통해 잘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