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왜 핵에너지를 거부하지 않는가

지난 월요일 짧게나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뉴스가 있었죠. 바로 프랑스에서 발생했다는 '원전 폭발사고' 소식이었는데요. 실상은 발전소가 아닌 핵폐기물 저장소에 일어난 작은 폭발 사고였습니다. 한명이 죽고 (고인의 명복을...) 4명이 크게 다친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어쨌건 방사능 유출도 전혀 없었고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도 아니었으니까요.  프랑스 당국과 IAEA(국제원자력기구)도 "산업재해(industrial accident)다, 핵발전 사고(nuclear accident)가 아니었다"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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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건 초기에 나온 이 기사들은 다 오보인거죠

지난 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쓰나미와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도한 세계인들로서는, 자라 보고 놀랐다가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 경우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에너지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이미 꾸준히 '탈원자력'으로 가는길을 모색 중이던 독일의 경우 아예 2022년까지 국내의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는 즉각 비교적 용량이 적고 오래된 8기의 원자로를 폐쇄해 버리기에 이릅니다. (현재 전력소비의 1/4 정도를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는 독일의 사정을 생각하면 정말 과감한 결단이 아닐 수 없죠)  그런데 도대체 왜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핵에너지를 포기할 생각조차 않고 있는 것일까요.

프랑스는 국내에만 59개에 달하는 핵발전소를 가동 중에 있고, 덕분에 국내 전기 소비의 75~78%를 핵에너지로 충당하고도 남아서 18%에 달하는 발전 용량을 주변국에 수출하는, 세계 최대의 전력 수출국가입니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 저항 없이 핵발전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프랑스인들의 의식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프랑스는 이미 18세기에 시민혁명을 통해 절대군주를 단두대에서 처형한 바 있는 화끈한 역사와 시민의식을 가진 나라 아닙니까.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이, 이미 96년에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Frontline에서 제시된 바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79년에 발생한 "Three mile island" 사건(미국판 체르노빌이 될 뻔한 사고였습니다. 이에 대한 소개는 다음 번에...) 관련 재판이 17년 만에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미국의 핵발전과 그에 관련한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심층 분석한,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였습니다.  PD인 Jon Palfreman이 프랑스에서 취재한 내용이 "Why the French Like Nuclear Energy (왜 프랑스인들은 핵 에너지를 좋아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정리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핵 에너지 관련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활발하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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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aux 핵발전소. 사진 출처:Wikipedia

기사는 당시 프랑스의 56번째 원전이 활발히 건설 중이던 프랑스 중부의 작은 시골 마을 Civaux에서 시작합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곳은 도무지 핵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프랑스의 전원 마을입니다. 하지만 베테랑 저널리스트인 Jon Palfreman은 이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원자력 발전소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습니다.
In France, unlike in America, nuclear energy is accepted, even popular. Everybody I spoke to in Civaux loves the fact their region was chosen. The nuclear plant has brought jobs and prosperity to the area. Nobody I spoke to, nobody, expressed any fear.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핵에너지가 받아 들여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인기 있기까지 하다. Civaux에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역이 발전소 부지로 선정된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핵발전소는 그 지역에 일자리와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만난 어느 누구도,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공포심도 갖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의 핵발전 계획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73년의 1차 오일 쇼크에 그 시발점을 두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국토의 거의 대부분이 비옥한 농지인 천혜의 농업국이지만 (프랑스 시골을 자동차로 달려 보면 정말 한숨밖에 안나옵니다 이렇게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니...) 광물 에너지 자원은 형편없이 빈약합니다. 기름도 한방울 안나고 가스도 없고 약간의 석탄은 거의 고갈 상태.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감지한 프랑스 정부는, 세계 역사상 가장 철저한 국가적 핵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향후 15년간 무려 56개에 달하는 핵발전소를 건설합니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프랑스의 정부와 정치인들은 어떻게 까다로운 프랑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걸까요? 당시 프랑스 산업부의 에너지/자원 담당국장이던 Claude Mandil은 다음의 3가지 문화적/정치적 요인들을 그 이유로 제시합니다.

첫번째, 프랑스인들은 독립적인 국민들이라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피점령국의 신세로 전락하는 뼈아픈 경험을 한 프랑스인들에게는, 에너지 안보 역시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의제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죠.  "No oil, no gas, no coal, no choice"

둘째는 문화적인 요인입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기술자와 과학자가 우대 받는 사회입니다. 많은 임명직/선출직 고위 공무원 내지 정치인들이 이공계 출신들이고,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또한 대단히 높은 편입니다. 법조계 출신 인사들이 정관계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나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거죠. 대부분 에꼴 뽈리떼끄닉(Ecole Polytechnic)을 비롯한 최고 명문 학교를 졸업한 이들 테크노크라트들은 (프랑스는 우리나라에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철저한 학벌 위주의 엘리트 사회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지만...'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원래 프랑스어인건 잘 아실 테구요.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대규모 과학기술 프로젝트들을 탄탄하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고속열차(TGV)가 그랬고, 초음속 여객기(콩코드)가 그랬고, 핵발전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일례로 Civaux의 빵가게 주인인 Jacques Rambault 씨는, 체르노빌 사건을 언급하며 두렵지 않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코웃음칩니다. "러시아인들은 할 일을 제대로 안한 거죠. 프랑스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그들과 달라요" 대단한 자부심이죠.  또다른 마을 주민인 카페 주인 Alain Cauvin씨는 "광우병이 핵발전소보다 더 위험할걸요"라고 말하고, Civaux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 온 마담 Schoumacher는 "수력발전용 댐 근처에서 사는게 훨씬 무섭겠어요" 라고 말합니다. (프랑스의 수력 발전 비율은 대략 10% 정도입니다)

마지막 요인은 '소통'입니다. 프랑스 정부와 정치권은 핵에너지가 가져 오는 혜택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 위험성 또한 숨기지 않았습니다. 워낙에 논쟁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이다 보니 전국민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핵에너지에 대한 토론을 갖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핵에너지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핵발전을 반대하건 찬성하건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 혜택과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각자 나름의 의견들을 갖고 있는 상황과,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막연한 두려움(혹은 맹목적인 추종)에 휘둘리는 상황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핵발전소들은 알차고 다양한 견학 및 방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했고, 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6백만명의 프랑스 인들이 최소한 한 번씩은 핵발전소를 방문해 보기에 이르릅니다.

여기까지는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게만 보이는 프랑스의 핵발전도 80년대 후반 들어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인데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 부분은 다음에 계속 적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핵에너지는 비용 면에서 가장 효율적일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장 깨끗한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번 문제가 터지면 생명이고 자연이고 환경이고 나발이고 완전 아작을 내버리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원이기는 하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현존하는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 가운데 유일하게 탄소 배출량이 제로에 가까운 에너지원이지요. 기후 변화 및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 때문에 해마다 이상 기후가 원전 폭발 이상의 환경 재앙을 불러 오고 있는, 그 결과 탄소 배출에 관한 문제가 국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무작정 핵에너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무리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라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딱히 적극적인 핵 옹호론자도 아니고 핵발전에 특별한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오랫동안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례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중요한 논점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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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incent

2011/09/15 00:29 2011/09/1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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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nk 2011/09/15 06:43 # M/D Reply Permalink

    노후화된 핵발전소의 폐기과정을 고려하지 않다면 깨끗한게 맞지요.

    하지만 발전소는 단순히 폐쇄한다고 그냥 폐기되는게 아닙니다. 그러다 녹슬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기 때문에 폐기되더라도 발전할 때와 똑같이 유지/보수를 해줘야 합니다. 폐기 이후엔 전기는 생산하지 못하면서 추가 비용만 엄청나게 들어가는 셈이지요.

    게다가 현 세대가 쓴 핵 폐기물을 물려받게 될 후손들은 무슨 죄입니까?

    1. vincent 2011/09/15 11:33 # M/D Permalink

      물론 발전과정에서 생성되는 핵폐기물과 노후화된 발전소의 폐쇄(de-commissioning) 과정을 당연히 고려해야지요. 이에 대한 내용도 적으려고 했었는데 글이 길어져서 후속편으로 미뤘습니다.
      핵발전의 상대적 경제성은 폐기물 처리와 노후 발전소 폐쇄/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모두 고려하고도 화석 연료 발전에 비해 월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비용 대비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재생 에너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구요. 하지만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대재앙에서 야기되는 손실은 경제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요.
      후손들에게 핵 폐기물을 물려 줄 것이냐, 온실 효과로 기후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지구를 물려 줄 것이냐는 심각한 고민 거리죠.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하게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거고, 어떻게 하면 고통을 최소화 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것이냐가 관건이 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역시 다음 기회에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2. 무터킨더 2011/09/15 07:31 # M/D Reply Permalink

    핵 옹호론자도 반대론자도 아니셔서 그런지
    객관적인 좋은 글입니다.

    저는 원자력 발전소는 반대입니다.
    프랑스도 언젠가 엄청난 재앙을 겪고 나서야 느끼겠지요.
    일본을 보세요.
    때론 높은 기술과 과학은 아무 역할을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프랑스도 물론이겠지만 독일은 과거 핵시설을 지을 때
    비행기 추락사고까지 계산하고 건축을 헀다는군요.

    요즘 독일은 당장 전기세가 올랐어요.
    앞으로 물가도 오르겠지요.
    핵연료를 포기하는 것도 그렇고
    태양열과 풍력 등 대체에너지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거든요.
    조금씩 어렵지만 모두 불만없이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의 부담때문에 불씨를 안고 사는 게 더 불안하다는 거지요.

    일본의 원전사고를 경험한 독일의 대처가 놀랍더라고요.
    전혀 상관없는 나라가 가장 먼저 신속히 대책을 세웠죠.

    핵은 그나라만 기술이 뛰어나 안심이라고 끝이 아닙니다.
    독일은 원자력을 포기한다지만
    프랑스나 벨기에 등 주변 국에 건재한 핵이
    항상 위협해오죠.
    체르노빌 사고 때문에
    아직도 남독일 숲에서 자라는 버섯과 멧되지는 식용금지입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1. vincent 2011/09/15 15:10 # M/D Permalink

      확실히 독일의 탈핵화 노력은 대단합니다. 이번 후쿠시마 대재앙 이후에 그토록 신속하게 8개의 핵발전소를 폐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꾸준히 준비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죠.
      물론 핵과 관련한 사고는 주변국들에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주변국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에 미치죠. 선진국들이 배출한 탄소 가스의 영향으로 발생한 이상 기후 때문에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온실 가스를 배출할 만할 산업이라고는 가져 본 적이 없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구요.
      에너지 이슈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고통 분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어떠한 노력도 무위라고 생각하구요. 그런 면에서 다시 한번, 독일 국민들의 참여도는 놀랍습니다.

  3. sk 2011/09/15 08:15 # M/D Reply Permalink

    근데 핵 폐기물이 나오잖아요...
    깨끗하지는 않은거 같은데요.

    1. vincent 2011/09/15 11:51 # M/D Permalink

      100% 깨끗한 에너지라는 건 적어도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화석 연료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소위 'Clean energy'의 대표격인 태양열이나 풍력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죠.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프랑스의 대처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으니 꼭 다시 찾아 주세요. :)

  4. 이용욱 2011/09/16 10:46 # M/D Reply Permalink

    원철아 오랫만이다. 프랑스에 있는 모양이구나. 잘 지내지?
    폐기물에 관한 후속편 기대한다. 빨리 써 주라 :)

    1. vincent 2011/09/21 00:48 # M/D Permalink

      예 전 프랑스에서 잘 지냅니다. 형도 잘 지내시죠? :)
      후속편 빨리 쓰도록 노력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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