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박봉'이라는 표현으로 'peanut'이라는 말을 쓸 때가 가끔 있습니다. Peanut을 다른 말로 'monkey nut'이라고도 하는데 원숭이가 땅콩을 특히 좋아해서 그런건지 어쩐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이런 속담도 있지요.  

If you pay peanuts, you will get only monkeys.

땅콩을 월급으로 주면 원숭이 밖에 못쓴다, 즉 월급을 아끼면 수준 낮은 직원들밖에 못쓴다는 얘기가 되겠죠. 점점 붕괴되어만 가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입니다만... 사장님들은 요새 젊은 사람들이 대기업/높은 연봉만 바라봐서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푸념하지만, 젊은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박봉에 일만 많고 비젼도 없는 중소기업에 청춘을 바치는 건 너무 risk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정말로 월급을 적게 주면 직원의 수준이 떨어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할 것 같기도 하지만, 과연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걸까요? 좋은 직장이라는게 꼭 급여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하니까요. (대부분은 월급을 주는 입장인 분들이라는게 문제지만)

과학적으로 증명 수준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학술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있기는 하더군요.

캔터베리 대학 경제학과의 Glenn Boyle이라는 사람이 발표한 "Pay Peanuts and Get Monkeys? Evidence from Academia"라는 논문인데요. (아 물론 저도 abstract만 읽어 봤지 본문 내용까지는 못봤습니다 ^^) 사실 이런 종류의 연구가 쉽지는 않은 것이, 논문 서두에 적혀 있는 것처럼 privacy 문제도 있고 해서 (많은 직장에서 직원들의 급여/연봉은 기밀 사항에 속하지요) 관련된 연구나 자료가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Unfortunately, privacy and other constraints on data mean that surprisingly little is known about this issue.) 그래서 이 양반이 쓴 방법은, 직종에 상관없이 급여가 일정한 동네를 기준으로 해서 수준을 비교한 겁니다. 그런 동네가 어딨냐. 뉴질랜드의 대학인데요.

논문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대학에서는 급여 수준이 전공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책정되어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건 학교 안에서 얘기고, 밖에 나가면 분명 차이가 나죠. 예를 들어 재무학자는 금융 회사에 취직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교수가 되면 영문학과 교수랑 똑같은 월급을 받기 때문에, 기회 비용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뉴질랜드 대학들의 재무전공 교수들의 연구 실적을, 전공 간에 급여 수준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미국 대학들의 재무전공 교수들의 연구 실적과 비교해 본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본문 내용을 자세히 안봐서 뭘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분명히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Paying (relative) peanuts attracts mainly monkeys."라는 거죠.

졸지에 땅콩에 꼬인 원숭이가 돼버린 뉴질랜드의 재무전공 교수들이 이 논문을 읽으면 무척 기분 나쁘겠는데요.

물론 회사도 그렇고 나라 경제도 그렇고 어려울 때가 있고 (좋을 때는 잘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어렵다 어렵다 허리띠 졸라매자 라고만 하니까) 이 고통을 함께 나눌 필요성은 있긴 하지만, 대졸 초임을 깎고 비정규직 채용을 손쉽게 하고 인턴 제도를 악용활용해서 수치상의 청년 실업율만 낮추고(그래도 20%에 도달하고 있다더군요)... 하는 걸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cartoonstock.com



견원지간


잘 받아서 잘 까먹네요

Posted by vincent

2009/04/16 10:33 2009/04/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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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의리 2009/04/17 04:41 # M/D Reply Permalink

    걱정됩니다. 취직을 해야하는데..

    1. vincent 2009/04/21 04:50 # M/D Permalink

      땅콩은 받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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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커리어 패쓰가 좋은 걸까

절친한 친구 P는 한번도 직장을 옮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눈 팔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동안 직장이 알아서 바뀌었죠. 그는 KAIST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지도 교수가 설립한 벤쳐 기업으로 직행했고, 박사 논문 주제로 연구하던 내용을 사업화 하는데 매진했습니다. 이 회사는 얼마 후 미국 회사의 투자를 받으면서 조직과 인력도 합쳤습니다. 한국과 미국에 각각 연구소를 두었는데 이 친구는 (자신의 의지와 크게 상관 없이 어디까지나 회사의 필요에 의해) 미국 쪽으로 옮겨 가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쪽 지분은 점점 줄어 갔고, 지도 교수도 발을 빼면서 점차 지도 교수/학교와 상관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미국 회사로 되었습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미국 현지 벤쳐 회사 직원이 된거죠. 다행히 연구 및 사업 성과는 괜찮았는지 나중에 우리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글로벌 대기업이 이 회사를 인수했고, 제 친구는 그 회사의 본사 수석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큰집 사서 부동산 발 금융 위기에도 끄떡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저의 학교/직장 선배인 L형은 여러 번 직장을 옮겼지만, 자신이 먼저 찾아 나선 적은 없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O라는 외국계 대기업에 취직한 그는 독보적인 성실함으로 항상 주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호주에 출장 갔을 때 잠깐 함께 일한 또다른 글로벌 기업(P라고 하겠습니다) 관계자의 눈에 들었고, 이 회사가 한국 지사를 낼 때 핵심적인 역할을 제의 받았습니다. 위험이 컸지만 받아 들였는데,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P사의 제품은 통신사를 대상으로 하는 고가의 소프트웨어(보통 계약 금액만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이고 세일즈 사이클도 길어서(최소 2~3년), 우리나라처럼 폐쇄적인 좁은 시장에서는 모 아님 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나라의 통신 3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회사가 도입한 솔루션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년의 영업 끝에 신중하게 선택해서 접근한 모 통신사가 결국 P사 솔루션을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본사에서는 미련없이 한국 지사를 폐쇄해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일한 협력사 사장님이 이 형을 너무 좋게 봤기 때문에, 설득 끝에 직원으로 채용합니다. 비록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지만 이 형은 언제나처럼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회사의 인력과 자금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싱가폴에 출장 가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애초에 박차고 나온 외국계 대기업(O사)의 본사 쪽 사람들과 협력을 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P사는 한국 지사 철수 이후 O사에 인수 합병되어 버렸고, 이때 만난 사람들은 P사 출신으로 O사에 흡수된 사람들이었습니다. P사에 있을 때부터도 알고 지냈던 이 사람들의 설득으로 이 형은 다시 O사에 들어 가게 됩니다. 먼 길을 돌아 결국 제자리로 왔지만, 어쨌든 열심히 살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과 인맥을 쌓았지요. 

저는 항상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고, 가능성이 보일 경우 그걸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SW를 국내에 도입하는 일도 해봤고, 반대로 국내 기술을 외국에 판매하는 일도 해봤습니다. 신생 벤처에서 개발 팀장을 하면서 사무실 셋업부터 직원 채용까지 일일이 제가 해야 하는 경험도 했고, 국내 대기업 기획실에서 신사업 기획일을 하며 말도 안될 만큼 경직된 조직 구조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도 했습니다. 회사가 망하거나 부서가 통째로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옮긴 적도 있었고, 일이 잘되고 능력도 인정 받아 더 있으면 충분히 승승장구 할 수 있었는데도 불확실한 기회를 찾아 미련없이 박차고 나온 일도 있었습니다. 항상 제가 먼저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력서 다듬는데 나름 이력이 났고 꾸준히 연락하는 헤드헌터도 몇 명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글로벌 기업의 거대한 조직에서 나름 꼬물거리며 존재감 느껴지는 일을 해보려 애쓰고는 있는데, 여전히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한 궁리는 멈춰지지 않습니다. 이젠 나이도 있고 제 경력 자체가 촐랑거리며 요리조리 옮겨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워져 버린 관계로 전보다 신중해지긴 했습니다만, 앞으로도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09년 현재, IT 계열 다국적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저를 포함) 3인이 지난 십수년 간 걸어 온 길들입니다.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지만, 스타일은 확연하게 갈립니다. 각자의 선택에는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고 누가 더 나은 길을 걸어 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아직 앞길이 창창하지만 사실 상 경력의 반환점을 돌아 가고 있는 중인 이들의 미래가 어떨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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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 테라피 쪽으로 전향할까 생각 중이야" 출처: cartoon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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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상담] 그래 그건 알겠고...세계를 지배하겠다는 것 말고 혹시 다른 목표는 없니?" 출처: cartoonstock.com


Posted by vincent

2009/02/19 05:11 2009/02/19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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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l 2009/02/20 05:24 # M/D Reply Permalink

    저도 형님의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프랑스 이야기도 들리고.. 싱가폴 이야기도 들리고.. 궁금합니다...

    1. 빈센트 2009/02/25 04:26 # M/D Permalink

      나도 무척이나 궁금해... 어디론가는 가겠지

  2. P 2009/02/22 05:28 # M/D Reply Permalink

    ...한번도 직장을 옮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눈 팔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동안 직장이 알아서 바뀌었죠...

    내 10년 인생을 이렇게 한 줄로 잘 요약해주어 고맙다.

    1. 빈센트 2009/02/25 04:26 # M/D Permalink

      한줄 요약! 남의 경력은 쉽게 요약하는데 내 경력은 갈피를 못 잡겠으니... -.-;;

  3. 강팀장 2009/03/12 09:15 # M/D Reply Permalink

    앞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창업 => 부도 => 신용불량자 => 회사설립 => M&A => 취직 => 이직
    앞으로???

    나이도 들고... 이제 쉽게 옮겨갈 곳도 없고.... 휴.....
    이 시점에서 화이팅~!! 답인것 같습니다.

    오늘도 공부해야지 결심하며... 저녁에 소주 한잔해야 겠습니다. ㅡ.ㅡ;
    (항상 이런식으로 늘어난 술배만.... 공부는 항상 내일부터..ㅡ.ㅡ;;)

    1. vincent 2009/04/21 04:51 # M/D Permalink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행동해야 할 그 시점이라고... 핑계는 대고 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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