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등록해 두고 꾸준히 읽고 있는 김종배(토씨) 님의 블로그를 통해, 최근 DJ가 간접적으로 제시한 바 있는
‘반MB민주연합’에 대한 손호철 교수의 비아냥을
읽었다.
다른 내용은 그렇다치고, ‘사과부터 하라’는 그의 지적이 영 불편하게 읽힌다.
우선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재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는 솔직한 자기비판과 대국민 사과가
선행됐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지금처럼 잘못된 대북정책을 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장본인이 바로 김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홍삼게이트라는 아들들의 비리 등 부패스캔들로
민주화운동의 도덕성을 실추시킴으로써 한나라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첫째로, MB 정권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닥치고) 사과부터 하라는 (실제로 글의 구성이 그렇다. 도입부 다음 문단이 바로 위의
인용문이다) 이 분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한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의 주장과도
일관성을 보이고 있어, 자칫 이것이 소위 ‘진보’ 세력의 의식 속을 일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정서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된다.
백번
양보해서, 앞선 두 정권,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 여러가지 실정이 있었다고 하자. 누구의 책임이건 간에,
어차피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모든 국민을 빠짐없이 만족시키는 정권이라는 건 유사 이래 없었거니와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권이 개판치는
건 다 지난 정권이 민심을 잃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니까 비판할 자격도 없다, 먼저 사과부터 하든지 아니면 닥치고 있으라는 (나를 포함해서 많은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읽힌다 두 분의 발언 모두) 윽박지름이 옳으냐는 것이다.
최근에
오바마라는 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서 전 지구적인 부러움을 사고 있는 미국의 정치판을 빗대 보자. 지난 8년간 미국은
부시라는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두번이나 거푸 당선시키는 바람에 자신들만 힘들어진게 아니라 갖은 전쟁을 통해 전 세계를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에
몰아 넣은 바 있다. 손호철 교수와 심상정 대표의 얘기는 클린턴이 정치를 못해서 부시에게 정권을 내 준 거니까 부시의 실정에 대해 비판하려면 먼저
반성부터 해라, 이 얘기와 뭐가 다른지? 빌 클린턴 밑에서 부통령 지낸 앨 고어는 대통령을 잘못 보좌해서 민심이 부시한테 옮아가게 한 책임이 있으니
비판할 자격도 없는 건가? (실제로 그는 '책임을 통감하고' 정계를 떠나 환경 운동가로 변신해서 노벨상까지 받기는 했지만) 빌 클린턴은 재임 시절
섹스 스캔들로 소위 ‘민심’을 많이 잃은 바 있는데, 힐러리 로뎀 클린턴은 그렇다면 먼저 내가 남편 간수를 잘못해서 바람이 나는 바람에 정권을
부시에게 내 주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사태를 야기하고 말았으니 일단 사과부터… 로 선거 운동 시작했어야 하는 건가?
(적고 나서 보니 위의 비유에는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정서적으로 그렇게 해석이 된다는 말씀이다.
논리적 결함을 논리적으로 풀어 지적해 주시면 나도 공부도 되고 감사하겠다. )
둘째로, 도대체 이 분들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과’의 대상에 대한 것이다.
심상정 대표의 글은 다시 읽어 보니 ‘결자 해지’라고만 했지 ‘사과’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손호철 교수는 ‘대국민
사과’라고 하는데, 여기서 ‘국민’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손호철 교수가 제시하는 두가지 사과의 내용을 보자. 첫째는 위의 인용 문구에서 보듯
DJ 정권의 도덕적 결함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인용하신 소위 ‘홍삼게이트’에도 불구하고 그
직후 집권한 것은 노무현이었다는 것은 시간차와 누적된 불만의 결과 정도, 로 이해하더라도, 위에서 미국 정치판을 예로 든 것처럼 실효 없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두번째로 제시하는 사과는 보다 직접적으로 정책에 관한 내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경제위기 상황이라는 조건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식민지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자본은 많이 들여올수록 좋다"느니 하며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박정희, 전두환
시절보다 더 심각한 양극화를 다수 서민들에게 선사했다. 그 결과가 바로 박정희 향수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압승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발언을 먼저 한 뒤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어야 그 비판이 살아날 수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보다 지난 10년의 양극화가 더 심했다는 건 교수님 말씀이시니까 정확한 수치와 근거를 갖고 말씀하셨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 MB 정권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 가속화될 양극화는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이라는 건 수치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기정 사실 아닌가.
예를 들어 DJ와 노통이 자신들의 ‘실정’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를 했다고 하자. 그 대상은 오롯이 손호철 교수, 심상정 대표, 그리고 그들을
둘러 싼 정말로 한줌도 안되는, 정작 선거에서는 한자리 수는 고사하고 3%의 득표력조차 간당 간당한 세력만을 만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세력은 두 부류일텐데, 한 부류는 DJ와 노통의 정책 기조를 믿고 지지했던 사람들이고 이들은 당연히 실망할 것이다. 나머지 부류는 지난 10년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일진데, DJ와 노통의 사과를 이들이 어떤 식으로 악용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손호철 교수님이 이런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도대체 어떤 의도로 그러시는지 알 수가 없다.
임기가 보장된 문화 관련 단체장들을 전 정권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 만으로 마구 쫓아 내는 정권이다. 방송, 통신, 언론 관련 각종 단체의 수장을 대통령의 선거 운동
책임자들로 갈아 치우는 정권이다. ‘전대미문’이니 ‘4년간 살아남기’니 하는 말로 경제 위기를 조장하면서 정작 상위 1% 부자들만 혜택을 보는
감세 정책 관철을 위해 입법 사법 행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세상이다. 어제 오늘 아침 저녁으로 정책 기조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고사하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면서 ‘지금 주식 사면 1년 내로 큰 부자 된다. 뭐 사라는 건 아니고 원칙이 그렇다는 얘기다’라는 말 30초 뒤에
‘내년엔 경제가 더 어려울 거다’라고 앞 뒤가 안 맞는 모순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이 ‘경제대통령’이랍시고 앉아서 나라 살림을 쥐락 펴락하는 세상이다.
상식과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세력이 세상을
장악하고 사람들의 생존을 옭죄고 있는데 그나마 상식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상식이 옳네 네가 말하는 상식은 이런 부분이 결함 있네
하는 식으로 서로 비판하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그 정도로 작금의 현실이 녹녹한 상황인가?
제목에 '유감'이라고 적은 것은 손호철 교수 같은 분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이, 그나마 양심이라는 걸 갖추고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는데 낭비되는
것이 안타까워서다. 내가 읽은 손호철 교수의 책들은 대부분 현실에 대한 그의 깊은 식견과 세상을 보는 따스한 시선, 개인적 성찰이 모두
아우러진 훌륭한 글들로 가득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