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저는 황당무계한 괴물 내지는 판타지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난 주에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를 너무 재밌게 보고 나서 어줍잖은 감상을 적기도 했고 학창시절에는 스탠리 큐브릭이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를 쫓아 다니며 챙겨 보느라 애를 먹었었고 비슷한 시기에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도 주요한 작품은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 보았었고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이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황당무계한 괴물 영화 역시 꽤나 즐겨 보았 더랬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를 대놓고 베낀 <레비아탄>이나 <딥임팩트>도 저한테는 재밌었고 <에일리언>의 아류인 <렐릭>이나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도 빠짐없이 극장에 가서 관람했고 원제인 <Pitch Black>을 <에일리언2020>이라는 보기에 민망한 제목으로 바꿔 개봉한, 무명 시절의 빈 디즐이 나오는 영화도 방금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서 봤었죠. 평단과 관객 동히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헐리우드 판 <고질라>도 전 재밌기만 하던걸요. 저는 공포영화를 전혀 보지 않지만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재미 없다고 생각한 적은 (아마 거의) 한번도 없습니다.

빈디즐 카리스마 만땅 - 상대적으로 저예산이었지만 꽤 강한 인상을 줬던 이 영화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돈 쳐발라 "리딕"이란 속편을 찍었는데 그건 망했죠
그래서 <D-War>도 아마 극장에 가서 보면 재밌다고 손뼉치면서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보기가 싫어 졌습니다.
2.
이송희일이라는 독립영화 감독이 자신의 개인블로그에, 다소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보는 입장에 따라 과도할 수도 있는, 심형래/D-War 비판을 적었었나 봅니다. 일촉즉발 상황이던 양 진영이 어리버리한 고문관의 오발 때문에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는 양으로, 각종 포탈 커뮤니티와 블로그스피어는 지금 온통 이 문제로 난리입니다. 어제만 해도 올블로그 키워드 1 2 3 위가 전부 디워 관련 내용이었고 추천글 10위까지 중 7~8개가 그 얘기였는데,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덜하네요.
이 사건을 접한건 어제 아침에 RSS 리더를 열었다가 예인님의 글을 읽으면서였는데, 이송희일 감독의 글을 퍼다가 비판한(원글 출처인 이송 감독 본인의 블로그는 과도한 비판을 이기지 못하고 버로우), 예인님이 걸어 놓은 링크 (이 글도 펌글이더군요... 원글은 여기)에 들어가 보고는 흠칫! 했습니다.
첫째는 이송희일 감독을 비판하는 블로그의 제목이 아래와 같았기 때문이고

뭐야 그거...무서워...
둘째는 그 글밑에 달려 있는 댓글 때문이었습니다.
"이승희일 이새낀 동성연애자라고 방방곡곡 소문내고 다니더라~ 그 영화 본사람 알겠지만 진짜 졸린다~ 동성애자 위해서 영화 만들어놓고 예술이라 떠들고 다니는 저새끼가 진짜 골때리는 놈이지~ "
디워빠 중에 이런 인간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심형래와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설득력을 잃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논의의 핵심과 전혀 상관없는 상대방의 신상을 놓고 조롱하는 것은, 특히 그 사람이 소수자(이송희일 감독이 퀴어 영화를 찍었다는 게 곧 그 사람이 성적 소수자라는 것은 아닐진대도 말이죠)일 경우에는, 백번 천번 잘못된 태도입니다. 여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런 찌질이는 극히 일부고 대부분의 디워빠는 논리와 이성을 갖췄다고요?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의 논리를 내세우기 전에, 자신과 같은 진영에 서 있는 저들을 먼저 꾸짖어야 합니다. 이규영 님이 이특-김연아 사건에 대해 지적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 저는 극장에 가서 디워를 (재밌게 혹은 재미없게) 본 200만 명은 디워빠 내지는 심형래빠 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만화의 성게님 같은 경우 그냥 영화를 즐겼다, 는 거지 그걸 갖고 디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다구리 놓지는 않거든요.

출처: marineblues.net
3.
어찌 어찌하다보니 심형래 감독을 황우석 박사랑 연결 짓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더군요. 서영석 기자가 만든 서프라이즈라는 사이트를 2002년 대선 때 이래로 즐겨 찾다가 황박 사태 때 황빠들의 집결지가 되는 걸 보고 발길을 끊었었는데, 다시 대선 시즌이 돌아 오면서 심심할 때 가끔씩 들렀더니만, 슬슬 심형래 감독을 황우석 박사와 연결하는 자칭 노빠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누구를 누구랑 연결하든 내 알 바 아닌데 문제는 이 연결 고리가 자꾸 은근슬쩍 노무현 대통령한테까지 가 닿는다는 거죠.
이 기회에 밝히자면, 저는 노빠입니다. 스스로를 노빠라고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적어도 저한테는 노무현 대통령이 원칙주의자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기득권 층의 지네들끼리 짝짜꿍 시스템을 원칙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극복하려고, 최소한 노력은,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비주류에서 주류로 치고 올라가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던 면도 있겠죠. 근데 황박 사태 때 깨달은 것이, 같이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래서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도, 알고 보면 저와는 전혀 다른 각도로 그리 했던 분들이 많더군요. 그분들은 노무현이 비주류 출신으로써 주류 시스템을 헤집고 들어 간 데에 더 열광하신 모양이고 그 때문에 황우석 박사에게도 마찬가지의 열광을 보내신 모양인데, 황 박사는 주류를 공략하기 위해 원칙을 캐무시한 분입니다. 저의 기준으로는 노무현과 황우석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서 있는 전혀 반대의 캐릭터인데 그분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심형래 감독이 황우석 박사에게 보냈다는 글이 사실이라면 두 분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틀리지 않은 시각으로 보이지만요.
그동안 MoveOn21에서 좋은 시각과 멋진 글을 보여 주던 커서님은 트랜스포머와 디워에 대해 완전 댓구를 이루는 정반대의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그동안 읽어 온 글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가 하면, 짧고 간결하게 문제의 핵심을 짚는 포스팅을 하던 Soyoyoo님은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이송희일 감독을 꾸짖으며 정작 그에 대해 가해지는 디워빠들의 극한의 무례에는 눈을 감습니다. 참 씁쓸하네요... (커서님은 가는이님의 댓글에 대한 댓글로 자신이 황빠라면 치를 떠는 황까였음을 밝혔고 soyoyoo님의 황박 사태에 대한 스탠스는 잘 모르겠네요)
4.
그러고보니 이 글에서 한꺼번에 3가지를 커밍아웃 했군요. 괴수물 팬(매냐 까지는 아니고)이라는 점, 황까라는 점, 노빠라는 점. 아 나도 이제 댓글 홍수에 빠지는 걸까나... 설마 ozzyz님처럼 대한민국 블로고스피어 역사에 획을 긋는 1,920개의 댓글(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받는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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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2007/08/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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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심형래,황우석,노무현 그리고 파시즘
* 노무현, 황우석, 심형래를 지지하는 분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또 그들을 지지한다고 비난받거나, 조소의 대상이 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급된 사례는 일반.....






흠..잘 읽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댓글 하나가 우리를 연결하는 작은 고리가 됩니다."라는 문구가 공포스럽게 다가오네요.
원체 댓글을 보지 않는데다가, 댓글이라는것이 학창시절 꼭 뒤에서 궁시렁..한마디 덧붙이는것으로 논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같아서요.
심형래, 황우석,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고리도..분명 불편하구요.
안녕하세요? 댓글 주신 것 보고 왔습니다.
이송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관객에게 보이는 영화 감독입니다. 영화가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위 수단이 아니라면 관객은 그의 영화를 소비해 주고 평가해 주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요.
저는 심형래의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송 감독의 글을 읽고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글에 어떤 이들은 위에서 님이 지적하신 "격한" 반응들을 보였겠지요. 인신 공격도 서슴지 않으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은 작용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이송 감독이 이성적으로 심형래 영화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을 했다면, 영화 감독 심형래를 동료 영화인으로 생각했다면, 심형래 영화에 대해 일말의 존중을 보였다면 네티즌들이 그런 악성 댓글을 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300억 짜리 루즈" 운운하면서 심형래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니 네티즌들의 반응도 겪한 것입니다. 저는 이송 감독이 경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영화를 대중에게 평가받는 감독의 자세가 아니구요. 그의 글에서 진보 좌파라 불리는 먹물들의 특권 의식을 봅니다.
비판을 하더라도 애정과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갈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민감하게 알아내지요. 그래서 저는 집단 지성을 믿습니다.
Vincent 님이 노빠라고 하시니 반갑습니다. 저도 열혈 지지자입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네요. 행복하세요. ;)
그냥 글 잘 읽고 지나가다, soyoyoo님 말씀 중에 '집단 지성'이란 말이 좀 웃겨서요. 노빠 소동 때도, 황빠 소동 때도, 그리고 디워 광풍 소동 때도 사람들은 늘 집단 지성의 승리를 말하더군요. 이런 명제가 처음 돌출된 게 아마 독일 나치였지요.
빈스 회원님의 포스트가 금일 오후 05:00에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될 예정입니다. 익일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과학)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글 잘봤습니다. 여러가지 요소들이 걱정스럽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내요.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있어 조심스럽게 트랙백 걸어봅니다. :)